연세대학교는 산업발전에 따라 급증하는 경영자교육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1964년 10월에 경영대학원 신설인가를 얻어 1965년 3월에 신입생을 모집한다. 야간 경영학석사과정과 연구과정을 개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업의 경영자, 공무원, 고급장교, 국영기업체 간부, 교수요원 등이 새로운 경영기법을 공부하기 위해 경영대학원에 쇄도하여 단숨에 큰 양적 확장을 이루었으며 서울대학을 위시한 전국의 대학들이 경영대학원의 설립을 서둘게 되었다. 경영대학원에서는 1976년 3월에 최고경영자과정을 신설하여 한 학기 비학위 경영자 재훈련과정을 처음 개설하였다.
경영교육의 양적 확장은 전국적으로 짧은 기간에 많은 교수요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연세대학교에서는 1959년 봄학기부터 대학원의 경영학 석사과정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교수진들이 1958-1960년의 일차 계약기간을 마치고 귀국하였으며 선발된 젊은 교수요원은 모두 유학을 떠나고 없었다. 국내에 기반이 없는 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2년의 주간 정규 석사과정에 응모하는 학생은 당연히 적었다. 이것은 직장근무를 하면서 저녁에 취학하는 경영대학원의 경우와 비교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70년대와 80년대에는 그 수가 급속히 증가하여 많은 능력있는 석사과정학생들을 배출하고 이들은 거의 타대학의 교수요원으로 학계에 진출한다. 경영학 박사과정은 그 뒤 1968년에 개설되어 초창기는 기존교수들의 박사학위 취득을 돕는 논문위주 박사제도 (과도기적으로 과목이수 과정 없이 논문만 쓰는 구제 박사제도)로 진행 되다가 정규과정 박사제도는 훨씬 뒤인 1980년대 중반에야 졸업생을 내기 시작하였다. 정규 및 경영대학원 석사와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교수가 된 수는 현재까지 500명이 넘는다.
경영교육은 원주캠퍼스가 설립되면서 원주의 경법대학 경영학과를 1984년 10월에 정부인가를 얻어 개설하였고, 같은 해에 국제학대학원이 설립되면서 국제경영학 전공 석사과정이 별도로 개설된다. 경영대학원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1974년에 최고경영자과정을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들면서 경영학교육에 대한 기업들의 새로운 요구가 생기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내용보다는 기업들이 현장에서 요구하는 내용의 맞춤형 경영인재 교육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업계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연세대학교는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LG그룹의 기부를 받아 1998년 12월 17일에 상남경영관 (上南은 LG그룹 구자경 회장의 호)을 완공하고 1999년 상남경영원(Sangnam Institute of Management)을 개원하여 현장 위주의 교육 니드(need)를 수용하는 경영자교육기관으로 운영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영교육은 1958년 연세대학과 고려대학에서 처음 경영학과를 설립한 이후 거의 5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학부교육에 비중을 두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대학원교육은 우리나라 정부의 대학원교육규정에 따라 다른 학문 분야의 석사과정과 똑같은 방법으로 운영해야 했고, 사회적으로 미국식 MBA시장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식 경영석사(MBA) 과정을 도입한 예가 없다.
그러나 산업 발전과 기업의 국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 기업에서 미국대학의 MBA 학위 소지자를 찾는 수요가 점차 느는 추세에 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서는 미국의 University of Washington(Seattle)와 협력하여 1년 5개월의 MBA 과정을 1997년 공동으로 미국의 AACSB(미국 경영대학 연합회) 규정에 따라 설립하였다. 이것이 GEMBA(Global Executive MBA) 과정이다. 연세대학 경영학과에서 5개월 간 MBA 1년차 교육을 영어로 수강한 후 워싱턴대학교(UW) 경영대학에서 1년간 학점을 취득하고 워싱턴대학의 MBA 학위를 취득하는 국제협동과정이다. 이로서 미국식 석사과정인 MBA 과정이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미국대학과 국제적으로 이러한 협동 MBA 과정을 우리나라에 설치한 것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가 제일 처음이다. 이 과정에 이어 1998년에는 경영대학원에 2년제 정규 Global MBA 과정을 신설하여 영어로 강의하는 또 하나의 미국식 MBA 과정을 갖게 되었다. 이 외에도 캐나다의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와 학점교환을 통한 석사과정의 협동 운영을 시도해 오고 있다. 이로써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는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처음으로 미국식 석사과정(MBA)을 선도하는 대학이 되었다.
1958 년에는 상경대학에 산업경영연구소를 개설하여 교수들의 경제 및 경영학 연구를 지원하고 "산업과 경영" 지를 출간한다. 학문의 특성을 고려하여 1993년에 산업경영연구소를 "경영연구소"와 "경제연구소"로 분리하게 된다. 그 후 1998년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과를 분리하여 경제대학원을 설립함으로써 경영대학원에는 경영학만 남게 된다. 2003년 2월에는 경영학과가 경영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연희전문학교의 상과로 출발하여 상학원의 상학과 시절을 거처 상경대학의 상학과로 있다가 경영학과가 설립(1958)된 후 10년 뒤 상학과는 경영학과로 통합된다(1968). 그 후 거의 35년 후인 2002년 11월 25일에 경영학과가 경영대학으로 승격된 것이다.
연전상과의 설립으로부터 올해로 90년이 된다. 90년의 긴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연희전문학교의 상과는 해방과 함께 경제학과가 개설되고 상학부 시절을 거쳐 상경대학이 된다. 1958년 경영학과가 신설되어 상경대학에는 상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의 세 학과를 갖게 되고 1966년에는 상학과와 경영학과에서 각각 10명씩 20명의 정원을 확보하여 응용통계학과를 신설하니, 연세대학교의 상경교육은 연전 상과로 출발한지 약 50년 만에 네 과를 거느리는 상경대학이 된다. 상경대학은 경영대학원, 경제대학원을 합쳐 학생 수 4천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대의 상경교육기관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마침내 경영학과를 경영대학으로 확대 개편하게 된다.
이로서 상경대학(경제학과, 응용통계학과)과 신생 경영대학은 "상경-경영 콤플렉스"로 그 개념을 확대하게 되며 상경대학과 경영대학이 연세대학교의 상경교육 캠퍼스로서 그 전통을 계승하고 동문회도 종전의 상경대학동창회를 그대로 승계한다.
연전상과는 처음 문과와 같이 언더우드관(Underwood Hall)에 두었다가, 19XX 년도에 아펜젤러관(Apenzeller Hall)으로 옮겨 처음 독립 건물에서 공부하게 된다. 건물이 협소하여 새로 지은 성암관을 일부 빌려 쓰기도 한다. 1969년도에 "경영학 교실단"을 완공하여 입주하였다. 1996년 6월에는 현재의 상경대학 건물을 신축하여 훨씬 넓고 현대식 설비를 갖춘 상경관의 봉헌식을 갖게 되었다. 상경관은 김우중(1956년 경제학과 입학, 대우그룹회장)의 기여를 기리기 위해 김우중관(대우관)으로도 부른다.
상학과와 경영학과의 교육과정
1915년 연희전문 상과에서 시작하여 2005년 오늘에 이르는 연세대학교의 경영학교육은 실사구시의 학문적 특징에 따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온 매우 동적인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럼으로 우리의 경영교육이 어떻게 성장해왔는가 하는 것은 경영환경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교과과정은 십 수 차례에 걸쳐 몇 년에 한 번씩 수정되어 왔다. 여기서는 변화를 준 환경의 시대적 구분을 연전 상과의 시작에서 해방까지(1915-1945), 해방 후 상학과로 변경된 후 경영학과가 신설 되기까지(1945-57), 1958년 경영학과가 개설된 후 오늘까지 매 10여년 마다 새로운 환경을 대상으로 개편된 교과과정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연전 상과 (1915-1945): 창설 초기에 상학에 관련된 교과과목은 다음과 같다. 상업사, 은행론, 보험론, 상법, 은행부기, 교통론, 창고론, 상업지리, 상품학, 상업산술, 경제원론, 재정학, 상업실천, 통계, 회계부기, 주산 등이다.
참고로 이 시기와 비슷한 1908~9년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 (Harvard Business School)의
경영교과과정(Industrial Management)의 일부를 비교해 보면 흥미 있다.
- Organization as affected by purpose and conditions (R. Robb)
- The organization of administration (R. Robb)
- An organization for the centralized management of public service corporations (R. Robb)
- Factory organization (J.N. Gunn)
- Industrial betterment: selection, education & stimulation of workmen (H.F.L. Porter)
- The accountant's relation to economical & efficient management (J.E. Sterrett)
- The co-ordination of a line of sub-companies (W.B. Dickson)
- Underlying principles of shop management (F.W. Taylor)
- Methods & results in efficient management (F.W. Taylor)
- Determination of types of factory building & equipment (C. Day)
- The routing of product in factories (C.C.L. Barth)
- The problem of division of labor (E.F. Gay)
- Labor saving devices in office administration (H.E. Davidson)
- Organization, direction and stimulation of salesmen (H.E. Davidson)
- The value and use of trade-marks and their relation to advertising and selling (E.J. Bliss)
- The control of sales through widely separated stores or branches (E.J. Bliss)
이 시기는 미국에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는 과정에 있을 때며 이에 부응해서 경영대학에서도 실사구시의 학문적 임무를 다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미 우리가 보아서 짐작할 수 있는 오늘날의 개념과 유사한 노무관리, 조직관리, 생산, 판매 분야의 과목을 가르쳤고 나아가서 모든 경영분야에 기초가 되는 효율제고를 위해 테일러(Fredrick Winslow Taylor)의 "과학적 관리법(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에 근거한 여러 과목들이 테일러 자신에 의하여 강의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상과 교육의 본산인 연전 상과에서는 산업화 이전의 상태에 있던 일본식 상과의 교과과정을 모방한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시기에 연전 상과에서는 조병옥, 최순주, 김도연과 같이 당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교수들이 미국식 실사구시의 과학적 관리방법을 강의 중에 강조하였다고 한다.
연희전문학교의 상과는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경제학을 강의하는 주도적인 학과의 역할을 하였다. 교수의 수나 학문적 깊이로 보아 당시 반 관학, 반 신민지 경제이론은 물론, 사회주의적 그리고 자본주의적 경제학의 학문적 기틀을 주도하는 강의와 연구의 구심점이 되었다.
연세대학교 상학과 (1946-1957): 이 기간은 해방과 함께 연희전문학교가 연희대학교로 승격된 이후 경영학과가 창설되기 전까지 11년간에 해당된다. 교과 내용은 해방전과 대동소이하나 초기에는 경영경제, 회계학, 회계감사, 원가계산, 관리회계 등이 새롭게 추가된다. 부기 중심의 실무형 교육이 회계학의 수준으로 바뀌고 증권시장론과 같은 과목이 추가된다. 이 기간에는 상학이 학문적으로 볼 때 회계학 중심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가지 특징은 독일식 "경영경제학"이 비로소 하나의 개론 형식의 과목으로 추가되다가 1954년도에 수정된 교과과정에서 처음으로 미국식 "경영학"이 단일 과목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은 아직도 상업실무형 교과과정이라는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문타자 과목이 거의 필수로 부과됐고, 주판 학습과 병행하여 미국제 기계식 수동계산기를 일주에 3시간씩 정식과목으로 가르쳤다. 계산기 수업은 교수가 한 대 밖에 없는 소형 수동계산기를 교탁에 놓고 근 70-80 명의 학생들에게 교수가 말로 설명하는 형식의 훈련이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초기 (1958-1970): 1958년에 미국의 대한기술교육원조 프로젝트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로 경영학과를 설립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t. Louis)의 주관으로 미국 전국에서 선발된 교수들 10여명이 연세대학과 고려대학에 파견되어 상주하면서 강의, 교과과정의 개발, 교수요원의 양성을 일거에 모두 수행하였다.
신설된 경영학과의 교과과정은 당시 미국의 경영대학장들로 구성된 "Curriculum Conference for Business Administration, U.S.A."의 연차회의에서 채택된 교과과정을 기본으로 하고 Washington University, Harvard Business School, Columbia University, New York University 경영대학의 교과과정을 우리나라의 형편에 맞게 선별하여 설계되었다.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에는 1958년도에 경영학과가 신설되었으나 기존의 상학과는 1968년도에 경영학과로 통합될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다. 상학과의 교과과정은 1958년부터 1968년까지 독립된 과이기는 하지만 경영학과 교과과정을 똑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1958년도에 경영학과가 신설될 때 워싱톤대학 프로젝트에 의하여 편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경영학 교과과정은 다음과 같다.
(두 학기) |
(한 학기) |
(한 학기) |
경영학원론 |
재무관리 |
경영분석 |
기업금융 |
배급관리 |
경기예측 |
인사관리 |
판매관리 |
경제원론 |
인간관계 |
마케팅 |
관리경제 |
생산관리 |
광고론 |
무역론 |
회계원리 |
시장조사 |
상업통신 |
경제지리 |
관리회계 |
경영학원강 |
통계학 |
경영정책 |
무역실천 |
경영학원서 |
산업심리 |
타자연습 |
실업영어 |
계산기 |
경영학연습 |
이 기간의 교과과정은 경영학을 어떻게 학문으로 규정하는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경영학을 다섯 가지 기본 기능 분야(basic function areas)로 규정하였다. 즉 인사, 생산, 마케팅, 재무, 회계분야가 그것이다 (밑줄 친 과목). 약간의 변동이 있으나 큰 분야로 이 다섯 가지 기능을 기본으로 경영학을 규정했다. 판매관리, 배급관리는 예를 들어 마케팅의 기능 분야에. 기업금융과 재무관리는 재무관리 분야를 분화시켜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이때부터 경영학과의 교수들도 전공영역을 다섯 가지 기본 분야로 나누었다. 그러나 위 교과과정을 보면 아직도 계산기, 타자연습과 같은 과목이 남아 있다. 한 가지 흥미 있는 과목은 "경영학연습"이다. 1970년 초기까지 당시 취직시험에 경영학을 출제하는 기업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경영학을 시험과목으로 출제하더라도 과거의 출제된 문제를 예상하여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교수들이 취직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특별지도하기 위해 마련한 과목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였다.
1958-60년 에 미국교수들이 다섯 기능 분야를 직접 강의하였는데, 미국 교과서는 학급별 학생 수만큼 공급할 수 없어 몇 사람에 한 권씩 배정했고 장(章)마다 문제풀기, 사례연구 방식으로 강의했다. 당시의 경영학은 다섯 가지 기능 분야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거나 용어를 해설하는 수준의 것이었으며 문제해결이나 의사결정을 전제로 한 과학적인 분석기법은 체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학생들의 교재나 부교재들은 당시 우리나라의 필경(筆耕)에 의한 수동등사 방식으로는 감당해 낼 수가 없어 그들이 가져온 미국제 등사기 ('Ditto器'라고 부르는 알코올용 기계식 등사기)를 이용하였다. 한국교수들은 영어 때문에 주로 젊은 교수들을 위주로 미국 교수들에게 분야별로 나뉘어 미리 개인지도를 받았다. 강의시간에 미국교수와 함께 들어와 강의를 학생들과 같이 듣고 혹시 학생들의 질문이나 영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으면 우리말로 통역을 해주는 조수의 역할을 하면서 훈련을 받았다. 필자는 당시 상학과 2학년 학생이었다. 한국에서 미국교수들에게 직접 경영학 강의를 수강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경영학 일세대 학생이 된 것이다. 그 당시로는 매우 감회가 벅찬 강의 모습이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의 교과과정은 전국 타 대학교 경영학과 교과과정에 모델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부 규정에 따라 1966년, 1974년도에 졸업 이수학점 변동에 따른 교과과정 변동이 있었으나 큰 틀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 후 학문의 발전과 사회적 요건의 변화는 경영학의 교과과정을 거의 10년을 주기로 변화시켜 왔다.
1970년대 (1970-1980): 이 기간에 있었던 교과과정상의 큰 변화는 경영학에 문제해결을 위한 분석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영학에서 문제해결에 필요한 계량적 방법과 행동과학적 방법이 1976년 교과과정 재편시 반영되었다. 조직행동론과 계량의사결정론을 새로운 과목으로 추가한 것이다. 이 무렵 선진국에서는 경영학이 문제해결 능력을 훈련하는 학문이라는 인식하에 문제해결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불가결한 두 가지 요소를 사람과 계량적이고 시스템적인 요소로 규정한 데 따른 것이다.
행동과학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 사회학, 사회심리학을 선수 과목으로 이수한 다음에 조직행동론을 수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량적 측면에서는 일반수학과 통계학은 물론이고 경영수학 또는 경영과학(Operations Research/Management Sciences)을 이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경영학과에 조직행동론을 전공 필수로 추가하고 전공 기초과목으로 심리학과 사회학을 문과대학의 두 관련 학과에서 이수하도록 교과과정을 개편했다. 계량의사결정을 전공필수로 이수하기 전에 일반 수학을 수학과에 가서 두 학기 수강하고 통계학을 응용통계학과에서 전공기초로 취득하도록 하였다.
1980년대 (1980-1990):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영학은 학문적으로 새로운 내용상의 변화를 맞이한다. 기존의 분석적 역량을 확장하여 국제경영학과 경영전략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게 된다. 우리 교과목에도 이 두 과목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을 위시한 선진 산업 국가의 기업들이 산업의 발전에 따라 대량생산과 대량마케팅으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국제적인 차별적 전략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당면한 데서 기인한다.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국제경영학과 경영전략을 전공하고 교수로 부임하면서 우리나라 경영학 교과과정에 이 두 분야가 새롭게 추가 된다. 이 시기에는 70년대에 전공필수 과목을 두 학기에 걸쳐 수강하도록 하였으나 새로운 과목의 추가와 졸업학점의 축소 (160학점에서 140으로 또 다시 120학점)와 더불어 교양 과목의 확대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전공필수 과목을 한 학기 과목으로 시간을 줄이고 관련 분야의 선택과목을 대폭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교과과정의 개편은 주로 미국을 선두로 일어나는 경영환경의 변화와 그 변화에 부응하는 학문 발전에 의한 것이었다. 현재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로부터의 학문적 영향은 거의 없었다. 일본은 현장 경영에는 강하나 학문적으로 경영학을 발전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사(實事)에는 강하나 구시(求是)에는 약한 때문이다. 일본의 성공적인 도요다 경영방식(TMS, JIT 등)도 그 원리는 미국의 경영학이론이나 원리에 기초한 경우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1990-2000): 지난 90년대의 교과과정에는 세 가지 중요한 변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하나는 경영정보, 둘은 유통, 셋은 기업윤리가 그것이다. 첫째로 경영정보시스템(MIS)이 새로운 학문분야로 클로스업 되었다. 물론 미국에서는 이미 70년대말부터 80년도에 이르면서 경영정보의 강의가 있어왔으며 우리대학에서도 단일 과목으로 개설한 것은 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본격적인 정보화, 그리고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90년대 중반으로 그 시작을 보아야 한다. 경영정보는 단일 과목으로가 아니라 기존의 모든 경영분야를 재편하는데 지렛대의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기존의 과목에서 정보적 경영의 원리와 실무를 가르치는 일대 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정보가 경영과 경영학에 준 영향은 기업 내부의 경영정보를 전제로 한 종전의 MIS보다 기업간 또는 국제간 그 적용 범위와 깊이에 있어서 충격이 대단히 크고 총체적인 것이다. 따라서 과목의 수도 많아지고 세분화되어, 인터넷, 전자상거래(e-commerce), 정보시스템분석, 회계정보시스템, Expert System의 과목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컴퓨터자료처리와 같은 기존 과목을 넘어서는 현상이었다.
두 번째 특징은 산업계에서 정보화 기술의 대두와 함께 유통의 혁신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물류와 로지스틱", "유통경로론" 등이 새롭게 도입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셋째로 우리 대학이 처음으로 기업윤리과목을 전공필수로 도입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영교육은 도입 이후 거의 50년을 지내왔으나 오직 효율만을 그 중심 가치로 두고 강조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은 거의 효율위주의 가치관으로 일관되었다. 따라서 많은 경우 효율의 역기능으로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여 사회적으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왔다고 판단하고 연세대학교에서는 기독교정신에 따라 기업윤리과목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한국경영학회에서는 중점사업으로 기업윤리에 관한 세미나와 사례집을 발간하여 타 대학에서도 기업윤리를 가르치도록 독려하게 되었다.
1995년에 대학별 모집에서 상경계열(경제, 경영, 응통)로 모집하는 광역학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교과과정에 다소 많은 교양 과목을 포함하게 된다. 그 결과 기존의 경영학과 전공필수 과목들을 줄이거나 선택과목을 늘리는 등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 계열 모집은 여러 가지 저항에 부딪혀 그 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면서 원래대로 재정비되었다.
2000년대 (2000- 현재): 이 시기에는 앞의 90년대에 비하면 뚜렷한 새로운 변화가 없이 이전의 경향을 이어 받아 심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공기초과목으로 조직행동론, 회계원리, 재무관리, 생산 및 운영관리, 마케팅, 계량경영학(경영과학), 전공필수로 기업윤리과목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60년대의 기본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이 기능 분야를 근간으로 파생된 선택과목들은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이들 선택 과목들은 정보화, 국제화의 방향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존의 기능 분야가 통합되는 시스템적 기업 변신을 지향하는데 필요한 많은 과목들이 제시되고 있다. 기업의 통합관리를 전제로 하는 SCM, 네트워크이론, 지능형 경영시스템, 그리고 경쟁력을 추구하는 무형자원의 관리와 자원의 상호관계를 전제로 하는 경쟁력 재고 수단을 연구하는 과목들(예, 브랜드관리, 관계 마케팅, 서비스마케팅 등) 이 눈에 띄게 많아 졌다. 창업과 벤처 경영에 관한 과목들도 새로운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교과과정이 이미 선진국에서는 전공 필수과목들을 현재와 같이 기본 기능을 중심으로 단일 과목을 하나하나 제시하지 않고 몇 개의 기능분야를 묶어서 하나의 과목으로 가르치는 방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상학과 및 경영학과의 교수진
연희전문학교가 1915년 YMCA에서 개교하면서 그 해 상과에 첫 번째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백상규(白象圭: 미국 브라운대 정치경제학 학사)를 채용한다. 그가 1923년 보성전문학교로 이직한 후 후임으로 이순탁(李順鐸: 경도제대 경제학 학사)이 부임하였고 2년 후 1925년에는 조병옥(趙炳玉: 미국 콜럼비아 대학 경제학 박사)과 백남운(白南雲: 동경상대 경제학 학사), 홍승국(洪承國: 오하이오 주립대 사학과 졸업?) 등을 전임교수로 보충한다. 일본인 교수 한 사람을 포함해 전임은 이들이 전부였다.
1928년에 김달호(金達鎬:와세다대학 상학사), 노동규(노동규:경도제대 경제학 학사), 손봉조(孫奉祚: 동경상대 상학 학사)가, 1930년에는 최순주(崔淳周: 상학 교육박사, 뉴욕대학교), 1932년에는 김도연(金度演: 아메리칸대학 경제학박사), 임병혁(林炳赫: 시라큐스대학 졸업) 등이 전임교수로 부임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 중 상학 과목을 강의한 사람은 백상규를 비롯해 이순탁이었는데 이순탁은 부임 초기에 백상규가 가르치던 창고론, 상업사, 상업정책, 주산, 경제학, 통계학을 강의했다. 그 이후에 부임한 조병옥, 김달호, 손봉조, 최순주, 김도연, 임병혁 등이 상학 과목을 강의한다. 경제학 교수들은 경제학을 강의하면서 상학에 관련된 실천적인 이론이나 실무에 관한 주제를 강조하였다고 한다. 특히 김달호, 손봉조는 일본식 상업실천 교육에 역점을 두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실용주의적 실사구시의 미국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최순주, 김도연, 조병옥은 당시 미국에서 산업화를 토대로 발전시킨 과학적 관리법과 효율성 위주의 경영관리, 심지어 판매원의 훈련 기법과 같은 분야에도 큰 관심을 갖고 이론과 실제를 강조하는 강의를 했다고 한다.
1940년대와 50년대 초 해방 전후까지의 교수진은 전임으로 장희창(동경상대), 임병혁, 박효삼(명치대 상학부), 정인섭(와세다 영문과), 정래길(경응대학 법학부), 신태환(동경상대, 상학사), 김효록(신호상대), 고병국(동경대학 법학부), 송종극(立敎大) 등이 있었고 강사로는 육지수(동경제대), 김성현(명치대 상학과), 이상훈(동경상대), 정인목(명치대 상학부), 윤만중(동경상대), 松波港三浪 등이 강의했다. 강사 중에는 전임 대우가 흔했다. 이중 박효삼, 장희창, 김효록, 이상훈, 김성현 등이 주로 상학 관련과목을 담당했다. 백상규, 김효록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로 옮기고 신태환, 이상훈 등은 해방 전후에 경성제대 현 서울대학)으로 옮겼다.
6.25 사변을 거치는 중 교수 중의 일부는 행방불명되거나 학교를 떠나고 일부는 부산 분교에서 채용되어 강의를 하다가 서울 수복과 함께 서울 신촌캠퍼스에서 강의하게 된다. 1957년도 경영학과가 설립 되기 직전의 상경대학 교수진은 다음과 같다.
홍승국(현대 영어: 1925년 처음 부임), 이정환(경제원론: 1952년), 김척도(경제사: 1952)
김준보(통계학, 경제학, 1952 전임대우) 최호진(경제학, 1951, 전임대우)
오일홍(경제사, 1952), 정종진(경제학, 1955), 이종하(경제학, 1956), 이제민(경제학, 19XX), 김문식 (농업경제학, 1958, 전임대우) 등은 경제학을 강의했고 상학과 관련한 과목들을 담당한 교수들은 나기호 (상업지리, 1958), 김상겸(경제학,상업통론: 1953년), 김규삼(회계학, 1952), 이기을(금융기관, 1955), 송태영(회계학, 1953 전임대우), 황일청(상학,1957), 이상훈(상학, 1938 부임 후 사임, 1957 전임대우), 조익순(회계학,1954), 임익순(1955, 미국 유학 중), 황창욱(상학, 1958, 전임대우) 등이었다. 그리고 강연규(회계학,1959, 전임대우), 이길현(상학, 1959?) 은 1958년 경영학과가 신설된 해에 부임하였다.
1958년에 경영학과가 출범하면서 워싱턴대학교 프로젝트에 따라 경영학교수 훈련프로그램에 의하여 경제학을 강의하던 이종하(마케팅), 임익순(재무관리) 두 사람은 워싱턴대학교 DBA(박사) 과정에, 김규삼 (회계학, MSBA), 이제민(경영정책, MBA)은 석사과정에 유학하고, 대학원 학생이던 송자(회계학), 이규원(생산관리)은 1960년MBA 과정에 유학하여 학위과정을 이수하고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송자와 이규원은 그 후 박사학위 과정을 위해 다시 워싱턴대학으로 가서 송자는 DBA 끝내고 코네티컷 대학에서 가르치다 수년 후에 경영학과로 돌아왔다. 이규원은 박사과정 중에 병사했다. 그 당시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교수들은 전공과목에 관계없이 모두 몇 개월에서 1년 정도 워싱턴대학 경영대학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왔다.
1958-60워싱턴대학 프로젝트로 한국에 파견된 교수는 6명이다. 이 중 연세대에서 강의한 사람은J. George Robinson(Marketing, Personnel Management), Charles William Emory(Marketing), 고려대에서 강의한 사람은 Robert C. Manhart(Production, Finance), Richard Clifton Reindenbach (Marketing), William R. Hoskins(Accounting)이고 Charles E. Gilliland(Marketing)은 주한 교수단장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최고경영자강습회(Business Management Development Conference)를 온양철도호텔 (현, 온양관광호텔) 에서 1958년 7월 14-16일에 개최하였는데 미국측에서는 앞의 5인(Hoskins제외)과 프로젝트 총책임자, Ross M. Trump, 워싱턴대학 책임자 L.J. Buchan, Sterling Harry Schoen(Personnel Management), Charles Leon Lapp(Retailing), Powell Niland(Production), Merle T. Welshans(Finance) 등 6명을 합쳐 11명이 참가하여 사례연구와 게임에 의한 강좌를 진행한 바 있다. 이 강습회는 정부와 국영기업체의 경영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경영학이 무엇인지 그 진수를 우리에게 가르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후 매년 계속되다가 4.19로 60년도에는 개최하지 않았다. 이 강습회가 우리나라 대학이나 산업계에 일반화된 최고경영자과정의 모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워싱턴 프로젝트의 주한 책임자는 초대Charles E. Gilliland(1957-60), 제2대 James S. Schindler (1960-62, 미국 AACPA회장), 제3대, John E. Walsh, Jr.(1962-64)였다.
경제학과에서도 그러했지만 경영학과에서는 학과가 신설되고 워싱턴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계약의 제 1기가 마무리되어 가던 1960년도에 4.19혁명이 발발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이미 정년 퇴임한 몇 교수 이외에 이길현, 강연규, 황창욱이 학교를 떠나고 김규삼이 한양대학으로 옮겼고1961년 마케팅을 강의하던 황일청이 신설된 서강대학 경영학과로 떠났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콜럼비아대학에서 MBA를 마치고 부임한 강연규는 회계학을 미국의 교수방법으로 철저하게 가르쳐 공부하려는 많은 학생들에게 감명을 주기도 하였다. 경영학과(상학과) 교수진은 워싱턴 프로젝트 교수육성계획에 따라 교수들이 학위과정을 끝내고 귀국하는 196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 진용이 안정되기 시작한다. 이들이 경영학 제 1세대의 교수들이다. 이 시기에 가르치던 경영학의 5개 기본 기능분야의 첫 세대 전임 교수진은 다음과 같다. 마케팅에 이종하, 유붕노, 재무관리에 임익순, 이기을, 회계학에 송태영, 김규삼(연세대로 복귀), 인사관리에 정종진, 관리경제학, 경영전략에는 이재민, 생산관리에 이규원(이규원의 유학으로 김기영), 통계 및 경영수학에 이규화가 전부였다. 이들 중 유붕노, 이규화, 김기영을 제외한 이종하, 임익순은 DBA 과정을, 김규삼, 이재민, 이규원은 석사과정을 워싱턴대학에서 이수하였고 정종진, 송태영, 이기을 등은 워싱턴대학에서 비학위 연수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가 국내 다른 대학에 비하여 교수진을 기본적인 기능분야별로 본격적으로 보강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에 일이다. 이규원이 병사한 뒤 생산관리 분야에서 김기영, 인사조직행동분야에서 오세철이 전임교수로서UB (United Board for Christian Education in Asia) 교수장학 프로그램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것을 필두로 미국대학에서 가르치던 송자, 이학종 등이 경영학과에 1-2년간 교수로 합세하였고 추휘석(경영과학), 정종암(회계학), 정구현(국제경영학), 신영수(경영과학) 등이 1970년대 후반에 부임하였다. 연세대학은 당시 12명의 경영학 교수를 확보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국내 제일의 교수진영을 갖게 되었다. 얼마 후 송자와 이학종이 영구 귀국 전임교수로 합류한다.
1980년대에 교수확충이 활발하여 이 기간에만 16명을 충원하였다. 이들의 대부분은 제 1세대 교수들이 가르친 제 2세대로서 유학 후 귀국한 사람들이다. 임웅기, 경규학, 김준석, 주인기, 이완수, 정종락, 박상용, 장대련, 김태현, 박흥수, 윤세준, 김지홍, 구본일, 박헌준, 박승준(얼마 후 사임), 그리고 원주에 안영갑, 소영일, 이종민, 한기수가 그들이다. 1990년에는 총 교수 수가 신촌에만28명에 이르렀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2005년을 맞는 오늘에 이르러 제 1세대 경영학교수라 할 수 있는 김규삼, 이재민, 유붕노, 임익순, 이기을, 이종하, 정종진, 이학종, 송자, 김기영(오세철은 명예퇴직)이 모두 정년 퇴임하고 90년대와 2000년대에 새로 충원된 교수를 합하면 총 47명이다. 이제는 분야의 수도 달라지고 분야별 교수 수도 10명을 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998년에 이학종이 금호석좌교수, 1998년에 김기영이 상남석좌교수로 임명되고 1998년에 한찬기(미국, 볼링그린 대학교)가 현대자동차 석좌교수로 일년간 초빙되였다.
경영대학으로 개편된 후에는 국내 타 대학은 물론 외국대학과의 양적 질적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모든 경영대학이 전임교수 한 사람당 학생 수를 가능한한 적게 유지하기 위하여 교수 수를 일 이년 안에 두 배로 확장하는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학생 대 교수의 비율을 낮추는 투자 외에는 달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교육의 질은 교수진의 연구능력이 꾸준히 높아지는 경우에만 보장된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이 달성해야 하는 경쟁력은 연구능력을 갖춘 교수의 수를 늘리고 교수당 적은 수의 학생들을 철저히 교육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적 기준에 의한 경쟁에 예외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AACSB 인증학교가 되고 국제적인 경영대학으로 거듭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학과 경영학을 이 나라에 도입한지 90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 이제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경영과 경영학을 개발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경영이론을 제시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연세대학교의 경영학이 나아갈 실사구시의 비전이라고 믿는다.
(주) 이 글에서는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했다. 특히 해방 전 연전상과의 교과과정과 교수진에 대한 내용은 다음 자료에서 많이 인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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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기중 교수의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한국경제학계 동향" 연세경제연구 제IV권 제2호(1997.9)
와 이 번에 쓰신 연세대학교120 년사 중 "실사구시의 연전상과" 원고
(2) 홍성찬 교수의 두 논문 "일제하 연전상과의 경제학풍과 '경제연구회사건'" 연세경제연구 제1권 (1994.9)과 "혀정 이순탁의 생애와 사상" 연세경제연구 제IV권 제 2호 (1997.9)
(3) 이수일 교수의 "1920-1930 년대 한국의 경제학풍과 경제연구의 동향: 연전상과와 보전상과를 중심으로" 연세경제연구 제IV권 제 2호 (1997.9)
(4) "연세대학교 백년사" 1985, 연세대학교
(5) 김규삼 교수 "연세대학교 경영학교육 40년",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5
(6) Professor Linda Sprague, CEIBS, Shanghai, China 의 도움으로 수집한 자료: Harvard Business School Archive: Course Outline for Business 17, Baker Library Harvard Business Schoo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