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콘텐츠 시작

Interview
대를 잇는 연세경영 가족 I. 장인 최기종(상과 43)·사위 신문영(상학 67)
등록일: 2015-03-25  |  조회수: 1,207

연세경영은 100주년을 맞아 ‘대를 잇는 연세경영 가족 찾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연세경영 100년의 역사 속에서 대를 이어 연세경영과 함께 한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장인과 사위로 대를 잇는 연세경영 가족이 된 최기종(상과 43, 이하 최), 신문영(상학 67, 이하 신) 가족을 만나보았다.

Q) 두 분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최) 저는 일제 강점기인 1943년에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일제의 학도지원병 동원대상자가 되었어요. 이에 만주로 피신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징용훈련과 강제노역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혹독한 세월을 보낸 후, 광복으로 풀려나 그 해 11월에 개교한 학교로 복학하였습니다. 일제의 강압으로 교명이 변경되는 등 설움을 겪은 모교가 이듬해인 1946년 8월 연희대학교로 승격하기 전 마지막 연희전문학교 상과의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신) 저는 1967년 상학과로 입학하였습니다. 상학과 마지막 입학이 1968년이이니 상학사로는 거의마지막 졸업생인 셈입니다. 당시 240명 입학생 중 여학생이 3명이었는데 예년에 비해 숫자가 많이 늘었다고 ‘여학생 홍수가 났다’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경영학과의 여학생 비율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대를 잇는 연세경영 가족 I. 장인 최기종(상과 43)·사위 신문영(상학 67)

좌측부터 신문영(상학 67), 최기종(상과 43)]

 

Q) 신 동문은 결혼하실 때, 연세경영 동문이어서 결혼 승낙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신) 당연히 도움이 되었죠. 연세대 동문이고 그것도 같은 과의 동문일 뿐 아니라 장인어르신의 연전 동기생들이 학교에 교수로 재직하고 계셨기 때문에 공통화제가 많았습니다. 노천극장 개축공사를 할 때 기증자의 이름을 표기한 의자를 장인어른께 선물해 드렸는데 매우 흐뭇해 하셨습니다.

 

Q)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모교와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최) 해방 전의 연희캠퍼스는 언더우드 동상이 있는 정원을 중심으로 위치한 디귿(ㄷ)자 모양으로 위치한 건물 세 채가 전부였는데, 요즈음의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후배들이 연세 상학 100년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깊이 되새기고, 선진국 명문 사학의 역사와 겨룰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연세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 재학시절 연세춘추 기자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전용 가로편집의 신문을 제작했습니다. 연세춘추가 선도한 개혁이 훗날 우리나라 모든 일간신문들의 편집체제를 바꾸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대학이 사회의 선도적이고 지도적 역할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세인으로서 세계와 국가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연세경영 100년을 맞이하여 새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 및 연락처

페이지 로딩 이미지 표시

페이지 로딩중 ...

페이지 로딩중 ...

x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