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호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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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창조적 사고의 요람이 되기 위해서는-최선미 교수 (경영대학 오퍼레이션 전공)

최선미 교수우리 경영대학의 미션은 “Creative Leadership”이다. 세계를 무대로 기업가적 가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창조적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 우리 경영대학의 사명인 것이다.

한국적 상황으로 볼 때, 지난 20세기가 노동집약적인 굴뚝 산업의 시대였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창조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지식집약적인 산업의 시대다. 지난 20세기가 Work Hard(열심히 일함)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Think Hard(열심히 생각함)의 시대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특징을 분석하기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이제 옛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제 창조적 사고의 시대가 왔다.

기업가들에게는 고객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욕구를 발견하고 상품화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무한한 창조적 사고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반짝거리는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상위 10%의 경영자나 관리자를 통해 창조적 인재가 양성되고 창조적 조직 문화가 형성되어 창조적으로 운영관리되어 비창의적인 하위 10%의 인력까지 효과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만 있다면 그 기업의 성공은 예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창조적 사고 능력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어떻게 경영학도들에게 교육시킬 수 있을까?

창조적 사고 능력의 배양을 위해 어떻게(How)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약간 무리이다. 창조적 사고의 가능성은 단순한 방법론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뉴얼로 시스템화 할 수 없는 것이 창조성(Creativity)의 본질이다. 시중에 읽히고 있는 창의적 사고 능력배양을 위한 책들은 대부분 “창의적 사고란 무엇(What)인가”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창조적 사고를 무엇(What)의 문제로 접근하다보면, 우리는 심리학의 천재성 연구(Psychological studies on creativity)로 치우치게 된다. 경영학에서 요구하는 창조성은 모차르트나 아인쉬타인의 천재성과는 다르다. 경영은 예술적인 측면이 있지만 예술은 경영이 아니다. 모차르트는 천재적인 음악가였지만 탁월한 CEO는 될 수 없다.

창조적 사고 능력의 배양을 위해 “언제 그리고 어디서(When and Where?)”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볼 필요가 있다. 언제 창조적 사고가 인류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올렸던가? 창조적 인재들이 변화를 이끌었던 시대와 지역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 천재들의 공통적인 이상(理想)과 이상(異常)은 무엇이었던가?

지난 8년 동안 나는 겨울 방학기간 중에 프랑스 파리의 에섹(ESSEC)경영대학교에서 MBA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파리에서의 강의가 즐거운 이유는 그곳에 루브르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루브르에서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왔던 유럽의 역사를 발견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르네상스의 창조적 정신을 발견한 것이다. 르네상스를 통해 암흑의 중세시대가 끝나고 유럽의 근대정신이 탄생했다.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는 곳에 르네상스가 있었고, 그 변화의 중심에 창조적 사고를 하는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있었다. 회화에 인간의 감정을 불러 넣었던 지오토, 원근법을 발전시키고 고대 건축의 신비를 풀었던 브루넬레스키, 조각품에 영혼의 존재를 새겨 넣었던 마사초, 르네상스의 봄(프리마베라)을 열었던 보티첼리, 조각, 회화, 건축의 삼대 장르를 통합시켰던 미켈란젤로, 시대의 천재성을 대표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루브르에서 창조적인 인재들의 사고가 어떻게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지를 엿보게 된다.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비슷한 시기에 줄줄이 태어나서, 이탈리아의 피렌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함께 창조적 활동을 펼쳤던 것이다. 특정한 한 시기에 특정한 한 지역에서 창조적 사고를 하던 인물이 집단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창조적 사고의 비밀을 풀기 위해 “언제 그리고 어디서(When and Where?)”라는 질문을 던진 이들에게 나는 주저 없이 15-16세기의 이탈리아 피렌체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왜 하필 15-16세기의 피렌체에서 인류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창조적 사고가 태동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피렌체가 “정치적 위기가 반복되었던 자유정신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단일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었다. 교황령,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국, 나폴리 공국, 피렌체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피렌체 시민들의 정치적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주변 강대국(오스만 제국, 프랑스,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의 패권주의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피렌체 시민들은 이런 정치적 위기 가운데서도 자유정신을 잃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이 통치할 때도 피렌체 시민들은 귀족을 비판할 수 있었으며, 완벽에 가까운 사상적 자유를 누렸다. 집권자가 폭정을 하면 바카라는 큰 종을 울려 공개적으로 실정을 비판할 수 있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사상적 자유가 보호되고 장려되었을 때 창조적 사고의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다.

피렌체가 창조적 사고의 요람이 된 또 다른 이유는 도시의 분위기가 치열한 경쟁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조각가였던 도나텔로, 건축가였던 브루넬레스키, 그리고 화가였던 마사초는 모두 피렌체에서 함께 활동하며 자기 예술 장르를 최고의 미적 표현양식으로 등극시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주저하지 않았다. 피렌체의 두오모(중심 성당)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세례당 문을 조각으로 장식하기 위해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는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는 피렌체의 정부 대회의실을 벽화로 장식하라는 공개적인 경쟁에 초대되기도 했다. 경쟁이 없는 곳에 창조적 사고는 없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경쟁은 제로 섬 게임이 아니었다.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무한 경쟁이 아니었다. 최극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도달해야 할 경지, 즉 파라곤(Paragon)을 위한 경쟁이었다. 멋진 경쟁, 이것이 바로 피렌체가 추구하던 창조적 사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21세기 지식산업사회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면서 우리 경영대학이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와 같은 창조성의 요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생각의 자유가 보호되고 격려되는 전통이 이어지고, 멋진 경쟁이 일상화되는 활기찬 분위기가 진작되고, 물질적 성공을 위해 추구하는 인재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진 인재를 양성해 가는 곳이 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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