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커다란 뉴스로 보도되고 있는 굴지의 대기업 소유경영자들의 행태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한국의 모든 경영학도들에게 심각한 문제의식을 일으키고 이제는 경영학의 연구와 교육의 외연이 넓혀져야 한다는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뉴스들이었다.
증권투자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갑부가 된 워렌 버핏은 최근 자신의 재산 370억불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사회환원의 방법은 세계 최대의 갑부인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하여 설립한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개인재산의 상당 부분을 이미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였고, 외동딸에게 물려 줄 1천만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재산도 결국은 게이츠 재단에 기부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버핏은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막대한 개인재산의 거의 전부를 다른 사람이 설립한 재단에 기부하겠다니! 감동의 연속이다. 그런데 한국 최대의 갑부이며 대표적인 재벌을 경영하는 총수들은 소수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편취하는 행위를 하여 기소되고, 심지어는 구속까지 되었으며, 재판을 받고 있다. 이렇기에 재벌기업들이 매년 거액의 사회기부를 하고, 최근에 문제가 불거진 재벌들의 경우 에는 1조원대의 사회기부를 약속했지만 국민들은 재벌의 사회공헌 행위에 별로 감동을 받지 못한다.
한국은 미국과 왜 이렇게 다르고,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의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문제를 푸는 실마리도 여러 각도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경영학도인 필자에게는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의 차이가 먼저 떠오른다. 게이츠나 버핏이 개인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에는 미국인은 기업을 반드시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기업의 가족승계가 보편화되지 않은 것은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을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더라도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과 이러한 믿음을 지탱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이 가능한 시스템의 요소들로 추정되는 제도들과 이들 제도들 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주인'이 없어도 기업이 발전할 있는 외부적인 여건과 내부적인 장치는 무엇인가. 경영자가 투자자의 부를 편취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결코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맡기지 않을 것이므로 효과적인 투자자 보호제도는 첫 번째로 중요한 외부적인 여건일 것이다. 노조가 지나치게 강성이면 지분이 없는 전문경영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노사가 야합을 할 수도 있으므로 노사평화의 전통도 전문경영체제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외부적인 여건일 것이다.
기업내부의 경영하부구조도 전문경영체제에 맞게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의사결정구조, 실적평가체제, 보상체제를 포함하는 경영하부구조는 지배주주가 있는 소유경영기업과 소유가 분산된 전문경영기업 간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컨대, 전문경영체제에서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이 현저히 높아야 할 것이고, 전문경영인의 인센티브 구조도 직접적이고 정교하게 설정되고, 전문경영인의 평균적인 재직기간도 증가하여야 할 것이다.
외부적인 여건이나 내부적인 장치와 함께 산업별 특성도 전문경영체제의 성공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업위험, 사업의 시계(horizon), 창업의 용이성, 인적자본의 특성은 중요한 산업별 특성의 요소일 것으로 추측된다. 사업위험이 높으면 위험을 집중적으로 부담하는 지배주주의 존재가 중요하므로 소유분산은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사업위험이 높을수록 전문경영인의 노하우도 그만큼 중요할 것이다. 장기적인 사업을 하는 업종에서는 지배주주가 존재하던지 전문경영인의 임기가 비교적 길어야 할 것이다. 기업특수적인 인적자본이 중요한 업종에서는 근로자가 인적자본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조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결속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소유분산과 전문경영체제는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주인'이 없어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대기업의 전문경영체제와 창업갑부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가능케 하는 문화, 법의 인프라, 상속·증여세제, 노사관계, 경영하부구조는 무엇이며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 앞으로 이러한 사회과학의 학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도적으로 모색해야 한국의 경영학이 진정으로 한국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위하여 이제는 경영학의 연구와 교육의 외연을 넓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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