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호 뉴스레터]
[겨울]
경영학(經營學)과 수학(數學) - 김성문 교수

김성문 교수미국 3대 방송사의 하나인 abc에서 ‘2006년 헤지펀드 매니저 연봉 순위 Top 10’이라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2006년 약 1조 5500억원($1.7 billion)의 연봉으로 1위를 차지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Renaissance Technologies)의 헤지펀드 매니저인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는 2005년에도 $1.5 billion으로 1등이었고, 2004년에는 2등으로 해마다 꾸준히 연봉 상위에 랭크되는 인물이다. 필자에게 1조 5500억원의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 처음에는 감이 오지 않았지만, 일년 중 240일을 출근한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에 약 65억원을 일당으로 받는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대단한 금액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훨씬 더 놀라왔던 사실은 그의 독특한 백그라운드였다. MIT 수학과 학사를 거쳐 UC Berkeley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마친 그는, MIT와 Harvard 수학과 교수를 거쳐 SUNY Stony Brook의 수학과 학과장을 하던 사람이었다. 이후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를 창업했고, 1988년에 출범한 대표 펀드인 메달리온(Medallion) 펀드가 투자자에게 가져다 준 수익률은 연평균 38.4%이며, 최근 3년간의 수익률도 연평균 30.3%였다. (참고로,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오를 때까지 인내하며 끈덕지게 보유한다는 투자의 귀재 워렌버핏(Warren Buffett)은 40년간 연평균 21.5%의 수익률을 올렸다.) 1988~1999년 동안 누적수익률은 무려 2,500%로 업계 2위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퀀텀(Quantum) 펀드의 수익률 1,710%를 압도한다. 1989년 약 -4%의 손실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내려간 적이 없다.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등에서 운영되는 유명 펀드에 타격을 입혔을 때에도, 메달리온 펀드는 2007년 첫 3분기동안 50%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이쯤 되면 그가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배운 지식과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고 싶다고 말하며 수학과 교수에서 월스트리트로 옮긴 제임스 사이먼스는 과학적 분석과 데이터에 기반하여 최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필자에게 바로 산 증인인 셈이다. 과거의 경험과 때로는 예술적 경지에 달하는 CEO의 육감에 의존하는 경영 방식을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의 250여명 직원 중 1/3정도는 주로 수학·통계학·물리학·천문학·컴퓨터 등 자연과학과 공학 박사학위 소유자이다. 이곳에 취업할 때 월스트리트의 경력은 오히려 감점이 되며, 채용 면접에서도 금융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으며, 금융·경영·경제학 전공자를 선호하기보다는 순수과학 박사학위자를 선호한다고 하니 다소 의외이다. 하지만, 바로 이들이 수학·과학의 초고차원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금융 데이터에서 특정 패턴을 발견하고 프로그래밍하여 만든 수천 개의 시스템을 운영한다. 수천 수만 개의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프로그램된 투자 운영 방식인 통계적 차익거래(statistical arbitrage)가 개인의 직관보다 우수하다고 믿기 때문에, 때로는 운영자의 직관 및 생각과 달라도 매매를 중지시킬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체계화된 프로그래밍의 방법을 신뢰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20여년간 누적된 놀랄만한 실적으로 볼 때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필자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체계화된 수학·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경영의 분야가 제임스 사이먼스의 예에서 소개된 금융분야의 투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도체∙자동차∙조선∙유통∙서비스∙통신∙의료∙미디어의 각 업종에서 생산계획, 인력 스케쥴링, 운송, 네트워크, 재고관리, 자원배분, 신제품 계획수립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수학적으로 체계화된 경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수업 시간에 세계 유명 기업들이 이러한 과학적 경영 기법을 적용하여 성공한 사례를 가르칠 때 학생들은 이렇게 복잡한 경영 환경하에서 어떻게 최적해(optimal solution)를 찾아 내는지에 대해 흥미를 느끼며 신기해 한다. 하지만, 이론적인 부분을 강의하면 너무 어려워하고, 진도를 잘 따라오는 학생이 많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필자는 매학기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개별 면담을 하면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찾을 수 있었다. 첫째, 고등학교 문과 학생들의 수학교육 부실화이다. 05학번 이후 학생들은 교과과정이 개편되며 고등학교에서 미분·적분 기호조차 본 적이 없다고 하니, 편미분, 자연로그, 지수함수를 사용하여 어떻게 강의하겠는가. 경영∙경제∙응용통계 등 상경계열은 수학을 많이 사용하는 분야인데, 어찌 미분∙적분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문과 학생들만 이곳에 지원하도록 현 교육제도가 되어 있단 말인가. 경영 전공 내용만 강의해도 늘 수업시간이 모자란 현실 속에서 수학 기초를 하나씩 친절하게 설명해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둘째, 고교 교과과정을 바꿀 수 없다면, 이렇게 수학 기초가 약한 학생들을 뽑은 후 대학에서 이를 보충하고 심화하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학과에서는 전공기초로 모든 학생이 수강해야 하는 경제수학이 있지만, 경영학과에서 개설되는 경영수학은 선택과목이라 어려움을 무릅쓰고 수강할 용기있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다.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지만, 수학 기초가 부족하여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수학이 필요한 과목들을 기피하게 되었고, 결국 세부전공과 진로를 선택할 때 운신의 폭이 좁아진 자신을 발견했다고 상담하던 한 학생의 고백을 잊지 못한다.

이제 어떻게 필요한 수학적 지식을 잘 제공해서, 05학번 이후 학생들이 경영학의 여러 분야를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학술대회에서 만난 여러 학교의 교수들과 함께 이야기 할 때, 한 지방대 경영학과에 계신 분이 필자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연세대 경영대 정도라면 어렵더라도 그런 수학이 바탕이 된 이론 과목들을 많이 열어 줘야지요. 거기는 그래도 미국 명문대학에 유학도 보내고 그러잖아요. 우리학교에서는 제가 개설하더라도 학생들이 이해도 못하고 수강생도 없어 바로 폐강 되지요. 맨날 노벨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왜 안 나오냐고 따지지만, 미분∙적분도 안 가르치고 대학 보내서 학생들은 수학 관련 과목 어려워 피해 다니는 것이 현실인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노벨 경제학상이 나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요즘 개설되는 과목명을 보면 팬시하고 화려해 보이는 것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가 정작 중요한 기초와 기본을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바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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