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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Jazz에서의 즉흥연주와 혁신의 연관성 - 배성주 교수(오퍼레이션 전공)

배성주 교수지난해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이후에 가장 먼저 가르쳤던 과목이 “제품 및 서비스 혁신 – Product & Service Innovation” 이었다. 이 과목에서 나는 한 시간을 할애하여 학생들에게 즉흥연주를 들려주고, 이러한 Improvisation이 조직, 특히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다. 글이나 설명만으로는 Improvisation의 참뜻을 새기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를 보여주어 그것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수업을 만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창의적인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과정이다. 아이디어가 모아지면 그것들을 평가하고 다듬고, 궁극적으로 마지막 제품과 서비스의 디자인으로 결정되기 까지 지속적인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과정은 그 안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 내는 듯한 틀에 박힌 과정으로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기존의 경영학은 물론, 신제품 개발과정을 연구해 온 기술경영 분야에서조차 ‘프로세스화된 관점’들이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신제품 디자인과 제품개발과정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바꾸고자 하고, 지속 가능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공정을 만들고자 하는 기업 경영자들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로세스화된 관점’에서 정립된 이론들은 소비자들의 기호를 정리하여 목록을 만들고, 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들을 나열한 후, 가장 나은 해결책을 선택하여, 실제로 그 해결책을 제공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방식들을 선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좀 더 발전된 방식은 기존의 순차적인 과정들을 반복(iteration) 함으로써, 중간에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나 아이디어들을 수렴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순차적이고 계획적인 제품디자인 과정은 불확실하고, 복잡한 디자인 과정과는 본래 궁합이 잘 안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디자인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맞는 공정을 설계하는 일은 몇몇 뛰어난 제품개발팀이나 디자인 팀의 팀장들만 알고 있는 노하우에 가깝다. 한마디로 말해 이러한 복잡하고 불확실한 디자인 과정을 관리하고 더 나은 과정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일은 경험으로 얻어졌지만 겉으로 표현하기는 힘든, 그래서 문서화하기가 어려운 암묵지(tacit knowledge)의 형태로 존재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몇몇 뛰어난 디자인 팀장들만 알고 있는 특별한 제품개발공정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각 자체를 변화 시켜야 한다는 데에 있다. 어떤 정형화된 프로세스가 있고, 그것을 그대로 따르면 제품이 성공하는 그런 마법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새로운 마법을 지속적으로 발명해내는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경영학자들은 ‘재즈의 즉흥연주(Improvisation)’를 통해 조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논의의 핵심은, 조직을 합리적인 계획과 그것의 실행이라고 보는 분석적인 사고방식의 틀을 벗어나, 좀 더 유연하고, 즉흥적이고, 변화에 능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즈의 즉흥연주는 흥미로운 조직적 메커니즘의 단서를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시작점은 기존의 관행을 깨는 새로운 코드진행이나, 패턴을 누군가는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흥연주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자기 자신만의 특별한 패턴에 익숙해 진 나머지, 익숙한 패턴으로만 시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 즉흥연주 자체의 흥이 깨질 뿐 아니라, 팬들이나 동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어 또 저 패턴이야? 이런 식으로. 기존의 관행을 깨는 새로운 아이디어야 말로 틀을 깨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새롭게 인지해야 한다.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는 이러한 새로운 패턴을 제공하고 다른 연주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Kind of Blue” 앨범을 즉흥연주로 채워 넣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앨범 자체가 아주 성공적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직 내에서 이러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생각들은 기존 관행이나, 다른 제약조건들로 인해 무시되고 사장되기 쉽다. 하지만, 기존 사고 방식과는 다른 이러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시스템하에서는 그러한 아이디어들을 존중하고, 성장시키며, 또한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누군가가 패턴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더라도, 그것을 계속 살려주고 발전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면 지속적인 혁신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혁신을 위한 팀들은 미리 짜여진 구조적인 부을 최소화 해야 한다. 재즈연주로 잠시 돌아가 보면, 모든 즉흥 연주에는 아주 최소한의 구조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블루스 12소절이나 아주 기본적인 구조가 반복되면서 즉흥연주의 뼈대를 구성한다. 보통은 노트에 이런 기본 구조를 적어 놓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크기의 구조가 미리 성립되는가는 그때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이러한 곡의 기본 뼈대에 공감하기 때문에, 아무리 색다른 패턴을 연주하게 되어도, 언제쯤 브릿지 파트를 연주하게 될지, 언제쯤 엔딩에 들어가게 될지에 대한 대충의 감을 갖고 있게 된다. 그 기본적인 구조 안에서, 즉흥연주의 향연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도 이러한 아주 기본적인 뼈대 – 기업의 철학, 소비자에 대한 태도, 디자인 철학, 제품에 대한 기본 컨셉 등 – 을 바탕으로 디자이너나 제품개발팀의 팀원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개인의 활동영역을 제공해야만 한다.

즉흥연주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실수가 나오게 마련이다. 미리 짜여진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에 연주해 보지 않던 패턴들을 연주하게 되면, 연주자들 사이에 실수가 나오게 마련이다. 실수는 연주자들을 얼어붙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베테랑 연주자들은 절대 당황하지 않고, 이러한 실수 자체도 새로운 창조의 일환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실수를 하게 되면 기존에 생각지 못하던 새로운 패턴들이 종종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수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실수 또한 새로운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경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팀원들간의 끈끈한 유대관계, 그리고 상호 커뮤니케이션 등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주로 솔로연주를 많이 하는 기타, 관악기, 피아노 연주자들도, 연주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연주를 잘 듣고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설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 종종 두 사람이 동시에 솔로로 나서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그 즉시 서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한 사람이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일들은 보통 1초도 안 되어 일어나게 된다). 트럼펫과 트럼본 등의 금관악기의 경우, 두 사람 이상이 화음을 맞추며 동시에 들어가야 되는 경우도 있기에 이러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현재 디자인이나 제품 혁신팀의 구성원들을 한 번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팀에서 서로의 실수를 더 나은 창조의 원동력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유기적인 팀워크와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고 있는지, 자신이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즉흥 재즈 음악을 들으면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한다.

즉흥연주의 가장 매력적인 측면은 조직을 이뤄가는 과정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어떤 공정이나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개체로서의 디자인 팀이나 제품개발팀을 생각한다면, 즉흥적인 재즈 연주가 주는 다양한 은유(Metaphor)들을 모두 놓쳐버릴 것이다. 하지만 재즈팀처럼 유연하고 창조적인 조직을 만들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즉흥재즈를 연주하거나 들으면서 너무나도 많은 교훈을 얻게 되리라 확신한다. 지금 당장 즉흥 재즈연주를 하는 클럽을 찾아 보기 바란다. 혹시 그것이 어렵다면 그런 연주가 담겨 있는 CD 라도 사서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나 즉흥연주가 주는 교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고, 조직에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즉흥연주를 들으며, 어떻게 팀원들이 서로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며 지속적으로 협상해 나가는지, 한 사람의 아이디어 제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 나가고 발전시켜 나가는지, 솔로와 백그라운드 연주를 통해 어떻게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적절히 조절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자신을 완전히 몰입 시켜서 신나게 연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누구나 디자인 팀이나 제품개발팀의 훌륭한 팀장이 될 자질을 개발할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한다.

* 참고문헌: Special Issue on “Jazz Improvisation and Organizing”, Organization Science 9(5), 1998
* * 이 글은 designdb.com에 게재되었던 글을 수정하여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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