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퇴직한지 벌써 2년이 되었다. 새로운 사회과학대학원을 만들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아직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다. 학문공동체를 발본적으로 새롭게 형성하는 문제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학문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고, 비판하는 훈련이 진보학문진영에서 조차도 안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집단적 협력의 풍토를 형성하는 것이 두고두고의 과제임을 깨닫는다.

일주일에 한번 학부강의를 하러 학교에 나와 젊은 학생들과 만나 토론하고, 후배, 제자 교수들과 점심을 하기도 하면서 경영대학과 연세대학교의 동정을 귀동냥하기도 한다. 학교를 떠나서 책임감을 가지고 듣지 않아 마음이 가볍다. 그러나 아직 노파심이 남아서인지 그냥 가벼운 것만도 아니다. 30여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며 경영대학 발전을 위한 쓴소리를 하는 것도 명예교수의 도리일 것 같아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우선, 경영대학 출범서 외쳤던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1980년 경영학과 과장이었을 때, 경영학과는 교과과정을 혁신하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기초사회과학의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완숙한 예술로서의 경영을 실천할 수 있는 토대임을 인식한 것이었다. 이는 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키우고 함께 학문 공동체를 마련할 우리의 미래지도자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학부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득권의 보호가 아니라 올바른 후학양성의 미래를 내다보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러한 인식은 훈고학적 타령이 아니라, 21세기 폭넓은 교양에 바탕을 둔 깊은 통찰력을 지닌 지도자를 양성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천착, 영리기업뿐만 아니라 공공조직에 대한 관심을 넓혀 연세경영학이 미국경영학의 획일적 모조품이 아님을 보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연세경영이 연세대학교 내에서 자부심을 갖는 별다른 전통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와 올바른 개혁에 대한 선도적 역할이다. 30여년간 연세대학교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영학과 교수들의 비판적 문제의식이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개악되는 제도를 막아내는 비판자로 만들었음을 알게 한다. 총장·학장선출 문제뿐만 아니라, 교수권을 침해하는 각종 인사제도에 대한 비판과 대안제시 등은 연세 개혁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위계나 관료주의를 넘어서서 모든 교수가 평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제출하고 투표하는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른 단합한 힘을 개인적 친소관계로 분리되는 분파적 이해를 넘어서서, 그리고 경영학과나 경영대학이라는 이해를 넘어서서 민주주의와 정의의 편에서 결정하고 행동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지키는 것도 연세 경영학을 특징 있게 살리는 길이다.

그러나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 문제는 미래를 끌고 갈 현명하고 의식 있는 주체들이다. 연세경영학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경영학이 되지 않길 바라고, 연세 경영대학이 세계 또는 아시아의 별들이라고 하는 피상적 의미의 순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세계의 경영대학으로 자리매김 되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 문장이 필자의 의도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어 일부 수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오세철 명예교수 (Ph.D. Northwestern University, 1975)는 2004년까지 30여년간 연세대학교에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주요 강의 내용은 조직행동론, 사회심리학, 한국사회의 구조와 변동, 연구조사방법론 등이었다. 현재 진보적 사회운동의 장으로서 '빛나는 전망'이라는 사회과학이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영대학 학부 강의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