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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6월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챈들러는 아내인 모니카의 생일선물로 노트북 컴퓨터를 사기로 결정한다. 전문요리사시험을 위해 인터넷강의를 듣고 있는 그녀에게 멀티미디어노트북이 적당하다고 생각한 챈들러는, HP.com에서 Pavillion zd8000을 주문한다. Visa카드의 거래 승인이 난 후, 그의 주문은 수 천마일 떨어진 중국 상해에 있는 Quanta 사의 공장으로 전달된다. Quanta는 전세계 노트북 PC판매량의 25%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중 90%이상이 상해 공장에서 생산된다. 주문된 모델의 부품들인, Intel사의 CPU, 대만산 ATI 그레픽칩, 한국산 LCD 스크린과 메모리칩, 일본산 하드디스크등이 공장 근로자에 의해 모아지고, 조립라인에서 중국산 케이스에 조립되어 넣어진다. 포장이 끝난 Pavillion zd8000는 FedEx사가 픽업해서 항공편으로 미국 멤피스로 이송한다. 멤피스에 위치한 FedEx의 물류 허브에는 미국 각 지역으로 배송될 화물을 분류하는 작업이 24시간 이루어진다. 챈들러의 컴퓨터는 자동분류장치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출발하는 비행기로 선적된다. 다음날 오후, 주문한지 일 주일만에, 노트북 컴퓨터가 챈들러의 집에 배달된다.1

위의 예는 미국의 소비자가 HP.com을 통해 노트북 컴퓨터를 구매할 때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 관련된 모든 회사들, 즉, HP, Quanta, Intel, ATI, FedEx등은 HP 노트북 컴퓨터의 공급체인 (Supply Chain)을 형성한다. 일반적으로,원재료 공급처, 부품업체, 완성품제조업체, 창고 유통업체, 도매/ 소매업체 등을 거쳐 최종소비자에 이르기까지의 개발, 구매, 생산, 물류, 서비스과정을 총괄하여 관리하는 것을 공급체인관리 (Supply Chain Management: SCM)라고 정의한다. HP사가 노트북 생산을 100% 아웃소싱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이 회사가 노트북 공급체인에 속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도 있다. 허나, HP사는 제품을 설계하고, 부품업체 및 조립생산업체를 선정하며, 최종소비자와의 거래를 관리하는 이 공급체인의 사실상의 리더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체인은 "Direct from Dell"이라는 광고문구로 이름난 Dell Computer가 먼저 개발하여 알려진 공급체인 방식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Quanta사 또한 Dell의 주요 하청업체이고, 다른 부품업체들도 Dell에 납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컴퓨터 산업에서는, 공급체인에 속한 회사들을 효과적으로 조정 관리해서, 최종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적정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회사만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언하면, 이 산업에서 게임의 원칙은, 공급체인에 속한 여러 기업들과 상호 협력함으로써, 공급체인 전체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고객을 위한 가치창출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급체인관리가 지속 가능한 기업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필자 또한 HP 와 Dell을 수년간 관찰하면서 가졌던 의문이다. 특히 최근 수년간의 디지털정보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기업간 정보의 공유가 수월해진 것을 감안하며 더욱 그렇다. 또한 점점 회사들의 공급체인관리방식이 비슷해지면서 과연 이 두 회사가 어떻게 차별화를 시도할 것인가 하는 의문 또한 생기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적인 공급체인관리는 기업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쉽게 모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학계 및 산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먼저, 공급체인의 리더는 분배적 정의 (distributive justice)의 실현이 성공적인 공급체인관리의 주춧돌임을 인지해야 한다. 공급체인의 통합관리를 통해 얻어진 果實이 협상력이 강한 회사에게 유리하게 분배된다면, 이는 기업간의 성공적인 협력관계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HP와 Dell 모두 자사의 강력한 협상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PC 조립업체에 하청을 주어 경쟁을 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구매기업과 공급기업간 상생(相生)협력관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또한 공급체인의 구조적 경직성 (structural rigidity)은 공급체인혁신을 열망하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기업들이 급격한 공급체인의 변화를 시도했다가 구성멤버들의 반발로 인해 실패한 사례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90년대 말에, Compaq사가 Dell과 경합하기 위해서 온라인 유통채널을 통한 직접판매를 시도했는데, 기존 유통업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서 오히려 전체 PC 판매에 타격을 입은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 공급체인의 혁신적 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공급체인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경험과 지식이 단시일 내에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Dell Computer의 사장 케빈 롤린즈는 Dell의 경쟁우위의 원천을 20여 년간 축적된 "Dell DNA"라고 이야기 한다2. 이는 그동안 축적된 공급체인 관리의 노하우를 일컬음이다. 그래서, 최근 IBM으로부터 PC사업부를 인수한 중국회사 Lenovo가 얼마나 효과적으로Dell, HP와 경쟁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수많은 경영관련 유행어의 홍수 속에 또 하나의 영문자 SCM을 접하면 아마도 "이번에 또 뭐야" 하는 회의적인 반응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동북아시아가 세계거대기업의 생산거점뿐만 아니라 판매시장으로도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공급체인관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하였으며, 글로벌화와 아웃소싱의 세계적 추세로 인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공급체인 전반 (개발, 구매, 생산, 물류) 에 걸친 충분한 이해와 관계관리 (relationship management) 의 기술을 골고루 갖춘 전문경영자들이 부족한 것이 국내 현실이다. 그래서 공급체인관리 (SCM)는 글로벌 경영을 꿈꾸는 젊은 경영인들에게 많은 도전과 동시에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유망한 분야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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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dapted from "the laptop trail," by J. Dean and P. Tam,
  The Wall Street Journal, June 9, 2005
2 "Execution without excuses," by T. Steward and L. O'Brien,
  Harvard Business Review, March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