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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이기심과 이타심 – 김정동 교수 (연세대 경영대학 보험학 전공)

김정동 교수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타적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신은 왜 이기적인 사람을 벌하지 않을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종교인과 철학자들이 묻고 대답하던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답은 없을까? 진화생물학, 경제학, 심리학 등이 이 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 답을 내놓고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이기적 행동과 이타적 행동은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먼저 동물사회에서 예를 들어보자. 어떤 종류의 개미는 진딧물을 길러 진딧물이 생산하는 ‘단물’을 취한다. 마치 인간이 소를 길러 고기와 우유를 얻는 것과 같다. 진딧물과 소는 평생 개미와 인간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 덕분에 먹이를 확보하여 굶어 죽지 않고, 어린 나이에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는 불행을 피하여 자손을 퍼뜨릴 기회를 얻게 되므로 대가를 충분히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개미와 인간은 이기적이고 진딧물과 소는 이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양쪽 다 이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약, 개미와 진딧물이 공생하는 사회에서 어떤 진딧물의 지도자가 나타나, “불쌍한 우리 진딧물들을 착취하는 이기적이고 악랄한 개미들을 내쫓고 우리끼리 일치단결하여 오순도순 잘 살아보자!”라는 공약을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고 하자. 개미들 중에도 이 공약에 마음이 끌려, “이제부터는 불쌍한 진딧물들을 착취하지 말고 내 손으로 식량을 구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진딧물 혁명’에 동참하는 ‘양심적인’ 개체들이 꽤 있을 수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진딧물과 개미 사회의 공멸(共滅)이다. 사회 시스템의 구조와 작동원리에 무지한 어설픈 자비심이나 이타심은 비극을 초래한다. 레닌과 스탈린의 공산주의 혁명이 그랬다. 또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인간사회에서 예를 들면, 어떤 기업의 사장이 납품가를 깎기 위하여 온갖 술수로 납품업자들을 괴롭히고, 소비자들의 불만에 대하여 변명만 늘어놓고 적절한 보상이나 원상회복을 회피한다면,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납품업자가 원하는 대로 값을 지불하고, 소비자들의 불만을 무한정 들어주는 사장은 과연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한 행동을 지속하면 그 회사는 적자가 누적되어 결국 파산할 것이고, 그 회사의 임직원들은 실업자가 된다. 그는 남들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하다가 자기 회사의 임직원과 가족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의 행동을 ‘이타적’이라며 칭찬해야 할까?

농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외국산 쌀 수입을 반대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농부들이 생업을 계속하게 하려면 값싼 외국산 쌀의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이타심에 호소하여 좀 비싸더라도 ‘동포’의 쌀을 사달라고 한다. 그러나 쌀 수입이 금지되면 농부들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도시 빈민들이 비싼 쌀을 사먹어야 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우려다가 다른 어려운 사람을 더욱 어려운 처지로 내모는 정책을 과연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선한(이타적인) 목적을 가진 행동이 악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많다. 부동산 임대료 및 분양가 규제, 최저임금제, 지나친 복지정책, 지나친 범죄인 보호 등등 이 세상에는 그러한 사례가 무궁무진하게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가 쓸모 없는 이타심을 발휘하여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각자 이기적인 본성에 따라 행동하고, 그 결과 시장에서는 가장 이타적인 자원배분(후생극대화)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단, 시장 실패가 생기는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하여 시장실패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을 아담 스미스의 후배 경제학자들이 좀 더 정교하게 손질하여 ‘후생경제학 제 1 법칙’으로 정리하였다.

요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것을 보고 위와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경제민주화란 정부가 ‘이타심’과 ‘정의’를 내세우며 어설프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더욱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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