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인센티브(Incentive)
어떻게 경험을 학습으로 이어지게 할 것인가?
이무원(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매니지먼트 전공)

데카르트의 철학과 그 이후 서양 사상사 주류에 기반한 합리성 가정에 의하면 한 조직의 구성원들은 경험을 통해 학습함으로써 더 나은 과정을 도출해내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획득할 수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수많은 경영학자들은 그동안 이러한 가설을 성공적으로 검증해 왔다고 판단하고 성공적인 학습조직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General Electric, 일본의 도요타, 한국의 삼성과 현대 등은 국내외에서의 경영학 커리큘럼에서 그 대표적인 단골 사례로 등장하고 있으며 타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그러한 조직들을 성공적으로 벤치마킹 할 수 있을까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과 조직의 학습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평소 경험과 학습의 합리적 연계성에 의문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오히려 개인이나 조직은 경험으로부터 학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경험이 득이 아닌 치명적인 독이 되는 경우도 많음을 관찰해 왔다. 15년의 경험을 축적한 전문의와 레지던트 3년차 수련의간에 병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능력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다소 충격적인 보고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세계 최고의 우주 공학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NASA 가 계속적으로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비슷한 실수와 사고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관측들은 경험 축적으로부터의 피드백이 학습으로 이어지는 데 있어 심각한 장애 요소들이 있음을 시사하며 이러한 장애물들을 정확히 파악하여 방지하지 않으면 학습조직이란 단어는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피드백이 결코 온전한 정보에 기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가을 우리나라 유명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분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는데, 이 기업의 경우 오랜동안의 채용 경험에 기인하여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채용 기준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의 근거를 듣고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용 후 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추적을 통해 피드백을 받으면서 계속 채용 기준과 절차를 수정 보완해 왔기 때문에 채용 절차와 기준이 꾸준히 향상 되어 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매우 중요한 피드백 정보, 즉 채용되지 않은 수많은 지원자에 대한 정보를 놓치고 있었다. 채용되지 않은 지원자들이 실제로 이 기업에 채용되었다면 어떠한 성과를 보여줄지에 대한 정보가 없이 판단된 그당시 채용 절차와 기준의 성공률은 커다란 오류를 안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간접경험의 한 예인 벤치마킹의 오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벤치마킹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성공한 모범 조직을 선정하고 그 조직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후 모방 또는 학습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그러한 모범 조직은 전체 조직들 중 1 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숫자이기 때문에 나머지 99 퍼센트에 해당하는 조직과의 비교 분석이 없이는 정확간 성공 요인을 분석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99 퍼센트에 속해있는 많은 조직들은 실패 후 사라진 조직들이 많아 그 조직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계나 언론에서 “삼성만의 고유 문화가 삼성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고 말하면서 벤치마킹 할 것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삼성과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무수한 다른 기업들을 간과한 결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성공에 수반되는 인과관계를 찾아야 한다는 지식인의 과도한 집착, 그리고 성공에는 꼭 중요한 이유가 있을것이라는 선험적 믿음이, 특정 성공요인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삼성의 문화가 성공을 낳은 것이 아니라 삼성의 성공이 문화라는 요인을 찾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벤치마킹이라는 단어가 경영학에서 가장 인기있으면서도 또한 가장 위험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경험으로부터의 피드백이 낳는 이러한 오류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위에서 암시했듯이 오류를 차단할 수 있는 모든 경험으로부터의 피드백을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의 대답은 그러한 방법은 “없다”이다. 하지만 조직 차원에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경험으로부터의 정보가 제한되지만, 조직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의 경험 피드백을 공유함으로써 피드백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NASA 에서 일어난 여러 사고들의 원인들에 대한 인터뷰 연구들을 보면, 엔지니어들간에 각자의 경험 피드백을 충분히 공유했다면 거의 모든 사고들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패 경험을 공개함으로써 예상되는 불이익과 처벌이 두려워 피드백 공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버드 경영대학의 Amy Admondson 교수가 강조하는 조직내 심리적 안전 (Psychological Safety) 이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나아가 경험 피드백을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학습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쪼록 학교, 기업, 공공기관 등 우리사회의 많은 조직들이 심리적 안전과 같은 기제를 통해 개인들의 경험들이 오도되거나 낭비되지 않고 타인의 경험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여 진정한 학습조직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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