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대학 뉴스레터 18호에서는 '여성의 커리어와 연세인'란 주제로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고 있는 김현수 동문(경영 00)을 만나보았다. 김현수 동문은 2004년 동아일보 수습공채로 입사해 경제부와 특집팀을 거쳐 정치부에서 국회와 총리실, 외교부를 출입하였다. 2008년 7월 편집국 통합뉴스센터로 자리를 옮겨 지난해 12월부터 동아일보의 방송 뉴스 프로그램인 '동아 뉴스 스테이션'의 앵커를 맡고 있습니다. 김 동문은 "저의 짧은 글이 후배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녀의 소중한 충고를 들어보자.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요즘은 여자가 '일을 하느냐, 집에 남느냐' 같은 갈등은 행복한 고민으로 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선택'이 가능한 여자들이 부러움을 받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일터가 여성 프렌들리로 변한 것도 아니다. 세상은 여자들을 '내 집 마련 대출 자금'이라도 벌어오라며 일터로 내몰지만, 여전히 가정을 잘 꾸리길 원한다. 목숨 걸고 경쟁에서 이긴 여자들은 '골드미스'라며 교묘히 조롱한다. 이러니 여자들은 잘 나가도 불안하고, 지친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 잘 하고 있는 건가" 나도 직장생활 만 5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진다. 사회와 회사가 만든 유리천장, 그리고 내가 지레 겁먹고 만들어 놓은 유리벽 때문에 어디로 돌진 해야 할 지 헷갈릴 때도 많다. 따라서 후배 여러분께 '성공적인 커리어 우먼이 되려면' 같은 얘길 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나도 좀 누가 개인지도 해줬으면 좋겠다. 다만 직업이 기자이기에 성공적이라 평가되는 삶을 산 사람들의 얘기는 전할 수 있다. 후배들을 위해 최근 인터뷰하며 마음에 남았던 얘기들을 모아봤다.
"옛날에 비하면 차별이 많이 줄어들었고, 눈에 드러나는 차별은 없어요. 아직 보이지 않는 차별이랄까 불이익이랄까 한 건 많죠. 그러니까 모든 게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이뤄지는 사회일수록 여성이 진출하기가 쉽고, 불투명한 구석이 많은 나라일수록 여성에게 불리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후자에 속하거든요, 정말 중요한 거래 같은 거는 공적인 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술자리라든가 이런 걸 통해서 되고, 서로 남자들끼리 골프 치다가 네트워킹으로 되고 그런 비율이 높으니까. 그런 점에서 불리한 점이 있지만 지금은 여성들도 능력만 있으면 평가를 제대로 받는 세상이 돼 있어서, 내가 여성이니까 어떨까 하지 말고, 뭔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기회가 항상 온다고 생각해요. 나 같은 경우도 대사가 된다든가 그런 걸 목표로 공부해 본적은 없는데,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돼 있으니까,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거죠."
"슬럼프에 빠질 때나 자신감을 잃을 때 전 자꾸 최면을 걸어요. '네가 제일 잘하고 있다. 네가 이정도 하고 있으면 이 일은 정말 어려운 거야' 이런 생각을 저 자신에게 해요. 안 그러면 너무너무 기가 죽어서, 주눅 들고 그래가지고 살기가 어렵거든요. 저는 변호사 생활 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기가 죽을 일이 뭐가 있으신데요?) 너무 똑똑한 사람이 많은 거예요 주변에는. 똑똑하고 체력도 좋고, 결단력, 판단력, 이런 게 뛰어난 분들과 일하다 보니 노상 주눅 들어서 자신감도 잃고. 내가 이런 걸 말하는 건 좀 바보 같은 거 아닐까. 이런 걸 모른다고 하면 정말 바보로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이 없더라고요. 너무 위축돼서 그러지 말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자꾸 가르쳐달라고 해야 해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있거든요. 그 시기를 놓치면 진짜 모른다고 못하기 때문에 아 이거는 초반에 내가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버리자. 그리고 빨리 배우자. 이렇게 생각을 하는 편이었어요. 이거는 아주 효과가 있거든요."
"원래 저는 꿈이 없었어요. 다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했어요. (대학 졸업 후) 배우가 되려고 뮤지컬 극단을 들어갔어요. 현대극장을. 저는 노래를 전공했기에 노래는 자신 있었고, 연극반을 했었으니까 연기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춤이 하나도 안 되는 거예요. 잘 하고 싶어서 이화여대 육완순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사실 제가 발레를 시작하긴 너무 늦은 나이였거든요. 군대까지 제대하고 발레를 한다는 게 사실 좀 어렵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를 발레로 하고, 현대무용 하고, 한국무용까지. 그래서 한 5년 간 몇 시간 못자고 계속 뛰었더니 어느 날 안무가가 돼 있더라고요. 굉장히 어려운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결국은 제가 연기를 하다 보니까 춤이 모자라고, 춤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안무가가 되고, 안무를 하다 보니까 기획을 하게 되고, 또 제작 감독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프로듀서가 됐어요. 산의 정상만 보고 오르다 보면 금세 지쳐버려요. 하지만 저처럼 돌부리 하나 치우고, 또 올라가다가 움막도 짓고. 그렇게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다 보니까 어느 날 높은 산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정말 당신이 목표로 하는 산에 오르고 싶다면, 정상을 바라보고 가지 말고 오히려 발밑을 보고 가라', 저는 그렇게 얘기 하고 싶어요."